사랑은 어디로 - 3부

사랑은 어디로 -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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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신과의 동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무슨 영적인 체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무섭거나 서늘하지도 않은

그냥 좁은 집에 두 사람이 붙어 사는

그런 불편한 동거였다.

혜승은 기본적으로 방안에 눌러 앉아 있었다.

가끔씩 몸을 숨기는 재주를 부리기는 해도

그건 일시적인 것이었다.

그렇다보니 신경쓰이는 일이 한 두가지가 아니었다.

상대가 아무리 귀신이라해도

옷갈아입을 때와 샤워할 때는 좀 그랬다.

그나마 혜승이 옷 갈아 입을 일도 샤워할 일도 없는 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그리고 침대 뺏기고 바닥에서 자는 일도 좀처럼 적응이 되지 않았다.



혜승같은 귀신을 지박령이라고 했다.

인터넷을 검색해 보니 지박령들은

자신이 죽었다는 사실조차 모른채 이승에 남아 있다고 그랬다.

그런데 혜승은 자기 죽었다는 걸 너무 잘 안다.

자살을 했으니 모를리가 없지.

하여간 인간세계의 상식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않는 귀신이었다.



그날도 난 회사에서 엄청 깨졌다.

그렇잖아도 정이 안가는 회사인데다가

자살소동 벌이고 나서는 뭐든지 도통 집중이 안되었다.

당연히 일이 제대로 손에 잡힐 리가 없었고

나의 하루 일과는 깨지는 걸로 시작해서 깨지는 걸로 끝이났다.

그렇게 지쳐서 돌아온 그날 밤 집문을 열다가 난 깜짝 놀랐다.

집이 정말 깨끗하니 청소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우리집이 맞자 싶을 정도로.

“놀랐지?”

또다시 천정에서 혜승의 머리가 내려왔다.

“청소했어?”

“응, 좀 치우면서 살아야 할 것 같아서.”

“귀신이 청소도 하는구나…”

“물론이지. ”

혜승은 팔짱을 낀채 고개를 끄덕였다.

“동심의 눈으로 보자면 우렁각시, 일반적 관점에서 보자면 폴터가이스트가 일어난거지.”

상상이 되었다.

아무도 없는 방에서 접시며 청소기가 휙휙 날아다니는 광경이.

“청소뿐만이 아냐. 밥도 좀 해봤어.”

아닌게 아니라 전기밥솥에서는 김이올라오고 있었다.

“너 월급이 얼마인지 다 아는데 맨입에 얹혀 살기도 뭐하고 해서 밥값 좀 하려고.”

혜승이 주걱을 들더니 히힛하고 웃었다.



기분이 나쁘진 않았다.

밤늦게 돌아온 방에서 누군가가 나를 기다리고 있고

내가 힘들여 움직이지않아도 더운 김 나는 밥을 먹을 수 있다는 사실.

그 상대가 인간이 아니라 귀신이라도 해도

결코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런 삶을 동경했었다.

희영이와 이런 생활을 꿈꿨었다.

내가 원했던 건 겨우 이 정도의 작은 행복이었다. 그런데…

그런 생각이 들자 가슴이 메어 왔다.

“아~ 또 뭘 그렇게 감격하고 그래. 쑥스럽게스리.”

혜승이 냉장고에서 반찬을 꺼내면서 말했다.

“냉장고에 워낙 재료가 없어서 제대로 된 걸 만들지는 못했어.”



침대옆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서 혜승과 나는 쭈그리고 앉아 밥을 먹었다.

“미안하다. 주희영이 아니라 손혜승이라서.”

혜승이 슬그머니 말을 꺼낸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빌어먹을.. 또 혜승에게 속을 들키고 말았다.

하지만 혜승이 미안해 할 일은 아니었다.

“희영이 아닌건 좀 아쉽긴 하네… 하지만 정말 고맙다.”

난 정말로 혜승에게 고마워하고 있었다.

“이런거 처음이라서…”

말 길게 하면 눈물이 나올 것 같아서 참았다.



혜승은 김치를 밥위에 얹더니 오물오물 먹기 시작했다.

“나도 혼자 산지 오래되서 말야. 그 맘 잘 알지.”

“전에 뭐했었는데?”

“학교다녔어. 여기서 가까운 대학교.”

“서울대?”

“서울대는 무슨. 내가 그렇게 똑똑해 보이니?”

혜승은 김을 집어 먹으며 말한다.

“사실… 너가 날 보기 시작했을 때, 나 좀 기뻤었다.”

“응? 왜?”

“밥먹는데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 나 죽어서 20일 지나 발견됐다.”

순간 나의 숟가락이 멈췄다.

“여름에 죽었으면 완전히 썩었겠지. 다행히 겨울이라서 온전히 발견됐지만 말야.”

혜승은 또 김치를 오물오물 씹어 먹었다.

“방에 한참 연탄을 피웠더니 의식이 흐려지더라. 그리고 깨어나서 보니까…”

혜승의 젓가락이 멈췄다.

“내가 방에 서서 누워있는 나를 보고 있더라고. 죽은 거지.”

그녀는 그 때가 생각났다는 듯이 살짝 웃었다.

“게다가 낯선 여자도 같이 서 있고. 그 여자, 목 맸다는 여자.”

그녀의 젓가락질이 다시 시작됐다.

“그 여자, 날 두고 어디론가 가더라구. 그리고는 20일을…”

혜승은 그때가 생각났는지 말을 잠시 멈추었다.

“20일을 아무도 없는 방에서 내 시체만 바라보고 있었어.”

혜승은 웃었다. 서글퍼 보이는 웃음이었다.

“혼자 살다 죽었잖아. 아무도 내가 죽은지 모르는거야.”

그녀는 젓가락으로 밥그릇을 하릴없이 두드린다.

“20일동안 나한테 전화 한통도 안왔었어. 그리고는…”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마침내 문이 열렸지. 친구도 그 남자도 아닌 집주인이더라. 냄새난다고 신고들어갔나봐.”

혜승은 보리차를 마셨다.

“119가 와서 내 시체를 비닐백에 넣어 들고 나가는데… 그거 보고 나 정말 많이 울었다.”

왠지 남의 일같지 않았다.

내가 죽었어도 아마 그런 풍경이었을 테니까.

“21년간 뭐하고 살았나 싶어서… 내가 남들에게 그것밖에 안되었나 싶어서…”

우리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나도 죽었으면 그랬겠지.”

한참을 뜸들이다가 내가 말했다.

“너 이사오기까지 참 어두웠다. 전기도 안들어오는 집에서 혼자 있자니. 배도 고프고…”

혜승이 씨익 웃었다.

“그래서 너 이사왔을 땐 정말 기뻤어.”

“먹을게 생길테니까 말이지.”

“뭐 부인은 못하겠지만 말야.”

혜승이 밥 그릇을 치우기 시작했다.

“자, 그릇은 내가 씻을게.”

나도 엉거주춤 몸을 일으켰다.

“됐네. 나중에 밥값 안낸다고 뭐라그러는거 듣기 싫으니까, 내가 할꺼야.”

혜승은 웃고 있었다.

아까와는 다른게 조금은 즐거워 보이는 표정이었다.



“그런데 그거 알어? 투명인간으로 사는 고통?”

혜승은 그릇을 씻으며 말했다.

“뭔데 그게?”

“너 처음 이사왔을 땐 정말 기뻤다. 이제 혼자가 아니구나 싶어서. 그런데…”

“그런데?”

“너눈에 내가 안보였잖아.”

“그거야 당연하거 아니가?”

“내가 여기 존재하고 있는데 아무도 그걸 몰라줄 때의 그 기분. 어떤지아니?”

“어떤데?”

“혹시 그런 기분 못느껴봤어. 강남역같은 곳 인파속에서 나 혼자 괜히 외로운 느낌.”

“아아 그런 기분이라면 좀 알 것 같다.”

“엄청난 소외감. 딱 그거였어.”

“그래서 내가 널 보기 시작했을 때 기뻤다고 그런거야?”

혜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혜승이 하는 말을 100% 이해할 수는 없어도

무슨 느낌인지는 조금 알 것 같았다.

“그래서 너랑 지금 이러고 있는거… 조금은 즐거워. ”

혜승이 배시시 웃었다.

귀여운 웃음이었다.

나도 조금은 기분이 좋아졌다.

비록 사람과는 아니지만 누군가와 함께 있다는 건

기쁜 일이었으니까.



그렇긴 해도 쥐꼬리같은 내 월급으로

두 입이 먹고 사는 건 쉬운일이 아니었다.

아무리 뒤져도 돈이 나올 일이 없는 귀신을 타박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단발 아르바이트를 하곤 했다.



그날도 아르바이트를 하던 날이었다.

코엑스에 새로 개점한 스테이크 레스토랑에서 캐릭터 인형옷을 입고

손님들이 데리고 온 아이들과 놀아주는 일이었다.

아무리 에어컨이 들어오는 실내라고 해도

한여름에 인형옷은 가혹한 노동환경이었다.



손발이 오그라는 행동과 낯간지런 액션을 해야하는

감정노동까지 곁들여야 했지만 그런 것은 상관없었다.

어차피 얼굴이 안드러나니까.

내가 오면 좋아하는 가족도 있었고, 무시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다른데 가달라고 얘기하는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아이들을 간지럽히고 하이파이브하고 웃기고 울리면서

레스토랑 홀 안을 돌아다녔다.



커다란 창문 아래 테이블에

유치원생으로 보이는 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이 새로 들어오길래

그쪽으로 다가갔다.

그곳에서 아이에게 장난을 걸려는 순간

바로 옆 테이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신혼생활 어때?”

“너도 빨리 결혼해라. 그럼 알게 될테니.”

그 목소리…. 희영의 목소리와 닮았다.

난 티나지 않게 시선을 옆 테이블로 슬그머니 옮겼다.

희영이었다. 숨이 막혔다. 주희영이었다.

그 앞에는같은 대학 동기이자 희영이의 가장 친한 친구.

김민지가 앉아 있었다.

“그건 그렇고 승준이는 어떻게 지내는지 아니?”

민지가 물었다.

“몰라. 관심 없어.”

내 이름이 들린다.

하지만 희영은 정말로 아무 관심도 없다는 듯 스테이크를 썰고 있었다.

“동기들 중에 걔 어떻게 사는지 소식들은 애들이 하나도 없더라구.”

“그 꾸질한 회사다니면서 하루 하루 살겠지.”

희영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가시가 돋쳐있었다.

“걔랑 보냈던 대학시절을 생각하면 지금도 아찔하다 정말. 그따위 남자랑…”

희영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래도 그 때는 제일 잘나가는 캠퍼스커플이었잖아.”

“키 좀 있고 옷태가 나서 좀 끌리긴 했었지. 그 나이에 우리가 뭘 알았겠니.”

희영은 싸늘하게 웃었다.

“멍청하고 능력도 없는 하류인생. 그래도 그때는 그게 착한 건줄 알았지.”

그녀는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더니 냅킨으로 입가를 닦았다.

“승준이한테 프러포즈 받고 나서야 깨달았어. 이런 남자랑 함께 했다가는 내 인생도 끝이라고.”

“그 얘긴 지금의 선택이 대성공이란 얘기?”

민지는 와인잔을 들어 희영이에게 건배를 청했다.

“당연하지. 자, 서승준 이름 듣는건 오늘로 끝내자. 지긋지긋하다.”

“그건 그렇고 신혼여행 어땠어. 몰디브 좋았어?”

민지의 말에 희영의 얼굴에 화색이 가득하다.

“몰디브 진~짜 진~짜 환상이야.”



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린애가 내 몸에 매달려 응석을 부렸지만 제대로 안아 올려 주지도 못했다.

내가 뭘 잘 못했는데?

큰 회사에 못다녀서?

돈을 많이 못벌어서?

돈 많은집 아들로 태어나지 못해서?

그것 외에 내가 너에게 뭘 잘못했는데?

이런 주제에 네 인생에 끼어들려고 했던 게 잘못이라면 잘못인건가?

이런 주제에 촌스럽게 카드 할부로 반지사서

프러포즈한게 몹쓸 짓이었나?



피가 머리로 몰리는게 느껴졌다.

헤어지던 날 그녀가 했던 말이 떠 올랐다.

‘그 동안 널아 보냈던 시간이 의미 없었다는 얘기는 아냐…’

애처럽게 말하던 그 모습은 가증스런 연기였나?

그때도 지금처럼 날 저주하고 있었던 말인가?

날 동정해 줄거라 생각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적어도 미안해 할 줄 알았다.

그런 희영은 날 비웃고 있었다.

나와의 시간을 후회하고 있었다.

난 잃어버린 그녀와의 시간때문에 목숨까지 버리려 했는데.

뻘짓이었다.

혜승이 말한대로 그 모든 것이 뻘 짓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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