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5부

사랑은 어디로 - 5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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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와 여자가 처음으로 섹스를 한

다음날 아침을 맞는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연인사이라면 침대 위에서 서로의 살을 부비며

낯간지럽게 뒹굴면 될 것이고

원나잇 스탠드를 즐긴 처음 만난 커플이라면

쿨하게 호텔을 나와버리면 그 뿐이다.

하지만 간혹 이도 저도 관계의 남녀도 있다.

바로 나와 혜승이다.



어젯 밤의 분위기에 이끌려

침대위에서 몸을 섞긴 했다.

그런데 우리가 연인사이인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심지어는 귀신과 사람이라는

넘을 수 없는 신분의 벽까지 있다.



그렇다고 원나잇 스탠드인가?

형태상으로는 적어도 원나잇 스탠드에 가깝다.

하지만 우리에겐 쿨하게 헤어질 방법이 없다.

내일 아침 해가 떠도

우린 헤어져 갈데가 없다.

그냥 하루 종일 얼굴을 맞대고 있어야 하니까.

고로 아주 심하게 뻘쭘할 것이다.

무슨 얼굴로 혜승을 대해야 하나…

난데 없는 걱정이 몰려왔다.



곁눈질로 옆에 누워 있는 혜승을 봤다.

그녀는 두 눈을 감고 죽은 듯이 꼼짝않고 있었다.

자는걸까?

아니면 그녀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는걸까?

짜릿했던 사정의 순간이 끝나고

몽롱했던 의식이 돌아오면서

이성이 머릿속에 다시 탑재되자

쓰잘데기없는 걱정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혜승은 정말 꼼짝도 하지 않았다.

저렇게 자는 걸까?

어떻게 1미리도 움직이지 않는단 말인가.

그런 면은 정말 귀신다웠다.

나는 혜승의 옆에서 혼자 헛기침 하다가

몸을 뒤척이다가

눈을 감다가 뜨다가 했다.

몹시도 긴 밤이었다.



한참을 지났다고 생각했다.

갑자기 눈앞이 밝았다.

아침이 온 듯했다.

창가의 커튼에 젖혀져 있는지 햇살이 얼굴위로 바로 쏟아졌다.

난 서서히 눈꺼풀을 움직였다.

“꺄아아아아악”

그 순간 여자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화들짝 놀랐다. 혜승의 목소리였다.

“뭐야. 왜그래?”

난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켰다.

혜승의 얼굴이 파리하게 질려있었다.

그녀의 가늘고 긴 손가락은 내 얼굴을 가리키고 있었다.

“너..너.. 얼굴이.. 얼굴이.. 완전히…”

혜승은 금방이지 울것같이 일그러진 표정이었다.

얼굴? 내 얼굴이?

혹시…

얼굴에 뭔가 탈이 난 것일까?

역시 귀신과 섹스를 했기 때문일까?

정기가 빨려서 온 얼굴이 쭈글쭈글해지기라도 한 걸까.

난 철렁 가라앉는 가슴을 부여안고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화장실로 향했다.



거울앞의 내 모습…

아무 변화가 없었다.

뭐가… 내 얼굴이.. 뭐가 어쨌다는 건가.

그 순간 뒤에서 까르르르르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혜승의 웃음소리였다.



“정말 쫄았나 보네. 귀신이랑 하고 나서 뭐 어찌됐나 싶었던 모양이지?”

“이런 썰렁하기는….”

혜승은 내 찌푸린 얼굴을 보며 손뼉을 치며 좋아하고 있었다.

해가 뜨면 그녀의 얼굴을 어찌 보나 걱정했던 내가 바보였다.

손혜승은 역시 그냥 손혜승이었다.



혜승은 냉장고를 뒤적이면서 타박한다.

“이제 좀 반찬이 될만한 거 사와라. 이런 되잖은 인스턴트는 집어치우고”

“이집의 갑은 엄연히 나라는 걸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얻어먹는 주제 뭔 말이 많냐.”

난 웃옷을 입으며 말했다.

“었쭈, 밥차리는건 누군데, 그 정도의 의견개진도 못하냐?”

우리는 어젯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평소와 다름없는 대화를 주고 받고 있었다.



더운 아침 햇살이 들어오는 창가에

난 콜라병을 들고 앉아 밖을 바라 보았다.

아침부터 매미소리가 시끄럽게 울려퍼진다.

바싹 마른 여름하늘 아래 울리는 매미소리는 유난히도 신경질적으로 들렸다.

난 어제 일을 생각하고 있었다.

나와 함께였으면 인생이 끝났을 거라고 말하던 희영.

내게는 꿈이 없다고 말하던 혜승.



뭐가 제대로 된 꿈일까?

나에게 꿈이 없다고 말했던 혜승도 그 질문에는 답을 하지 못했다.

난 하릴없이 혜승에게 물었다.

“어제 나보고 제대로 된 꿈이 없다고 말한 건 무슨 뜻이야?”

“우리가 꿈이라고 믿었던게 사실은 꿈이 아니라는 거지.”

“그 얘긴 어제도 들었다만 뭔 말인지 잘 모르겠다.”

“나나, 너나, 희영이나 결국 모두 같은 ‘꿈’ 을 좇았잖아.”

혜승이 말했다.

“같은 꿈?”

“돈 몇 푼 쥐고 남 앞에서 폼나게 살고 싶다는 거.”

“그것만큼 중요한 것도 없잖아. 그게 현실아닌가?”

“그럼 그 돈 몇 푼이 손에 들어오고나면 그 다음은 뭘 보고 살건데?”

혜승의 질문에 난 할 말이 없었다.

“그런 꿈… 너무 작지않나? 앞으로 살아야 할 인생이 몇 십년인데…”

그 말을 하고선 혜승이 갑자기 큭하고 웃었다.

“스물하나에 죽은 내가 이런 얘기하니까 좀 쑥스럽긴 하다.”

나도 혜승을 따라 웃었다.

“큰 꿈을 꾸라는 얘기인가? 얼마나 커야 제대로 된 꿈인데?”

“이루고 나면 죽어도 후회가 남지않는 그 무엇?”

혜승은 창 밖을 보며 말했다.

“너무 거창하게 들린다.”

“하긴 그게 꿈이라면.. 난 더 이상 꿀 꿈도 없겠다. 이미 죽었으니까.”

혜승은 또 다시 웃었다.



“후회하니? 죽은거?”

난 혜승에게 물었다.

혜승은 대답은 하지 않고 창가로 다가와

내가 마시던 콜라를 뺏어 든다.

매미 소리가 아까보다 더 크게 들렸다.

“8일째의 매미 아니?”

“8일째의 매미? 그게 뭔데?”

“죽기 얼마전에 본 일본 영화인데…”

“일본어도 할 줄 알아?”

“제2외국어로 좀 했었어.”

“거기에 이런 얘기가 나와.”

혜승은 콜라를 한 모금 더 들이켰다.

“매미는 땅속에서 나와서 7일밖에 못살잖아.”

“그렇지.”

“그런데 만일 8일째 아침을 맞은 매미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고.”

“8일째의 아침?”

“응, 다른 매미들은 어제 다 죽었는데 자기 혼자 살아 남아 8일째의 아침을 맞은 거야.”

난 혜승을 바라보며 귀를 기울였다.

“그 혼자 살아남은 매미는 행복할까 불행할까?”

어려운 질문이었다.

“너라면 어떨것 같아?”

“나라면?”

“혼자 남겨진 고독에 불행할까? 아니면 아무도 못본 아침을 본 행복을 느낄까?”

“나라면 불행하게 느껴질 것 같은데…”

혜승은 내 말을 듣더니 씨익 웃었다.

“나도 그렇게 생각했었어. 나 혼자 살아남느니 같이 죽는게 낫겠다고.”

헤승은 콜라병을 다시 나에게 건네 주었다.

“그런데 막상 죽고보니까 생각이 달라지더라.”

헤승은 몸을 있는 힘껏 밖으로 내밀었다.

“8일째의 아침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더라구.”

그녀가 하는 말.

뭔 뜻인지 알 것 같기도 하고 모를 것 같기도 했다.



어렸을 적 꿈은 좋은 대학가는 것이었다.

스카이까지는 아니더라도 이름만 대면 다 아는 대학에 들어간 후의 내 꿈은

희영이랑 결혼하는 것이었다.

작은 지방 도시의 그냥 그렇게 사는 회사원의 아들로 태어난 나는

서울 토박이 희영이가 보여주는 세계를 마냥 동경했었다.

그 세계에 들어가는 것이 나의 꿈이었다.



강북 출신이었던 희영이는 강남을 동경했다.

하지만 나는 희영에게 강남을 보여줄 수 없었다.

난 봉천동이라는 강남아닌 강남에서 힘겹게 하루 하루를 이어가는

지방출신 전입자일 뿐이었다.



그러는 사이 한 남자가 희영에게 강남을 보여주었다.

그것도 아주 전망 좋은 곳을.



영화 건축학개론을 보고 펑펑 울었던 기억이 난다.

난 기억의 습작을 기억하는 세대가 아니지만

그 영화의 바닥에 깔린 지역이라는 이름의 계급을

아주 처절하도록 실감한 터라

보는 내내 울었고, 끝나고 나선 심하게 절망했었다.



이게 내가 가진 꿈의 조감도였다.

그 허섭한 조감도에 혜승이 돌을 던졌다.

만일 내가 강남을 보여주었으면

그래서 희영이 내 여자가 되었으면

그 다음엔 어떻게 살거냐고…

솔직히 그 다음 일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팔일째의 매미라고 했나?

일본어를 할 줄은 모르지만

무슨 영화인지 한 번 보고 싶어졌다.



“아, 날씨 좋다!!!!”

혜승이 갑자기 큰 소리로 외쳤다.

“이런 날 강변대로 달리면 정말 좋겠다, 그치?”

혜승이 환하게 웃었다.

난 있는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좋은 여름의 한 낮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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