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6부

사랑은 어디로 - 6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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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도 무더운 저녁이었다.

난 헉헉거리며 언덕길을 올라가고 있었다.

언젠가는 이 달동네에서 내려와

평지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절로 드는 날이었다.



고개 하나를 넘어가자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내가 사는 5층짜리 원룸 빌딩.

그런데 조금 이상하다.

가만히 보니 내 방에 불이 꺼져 있었다.

혜승과 같이 살기 시작한 이후부터 저녁엔 언제나 불이 켜져 있었다.

그런데 오늘은 불이 꺼져 있는 것이다.

손혜승 이 여자 낮잠자고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귀신임에도 불구하고 할 건 다하고 사는 여자.

난 혀를 끌끌 차며 엘리베이터에 올라섰다.



맨위의 버튼을 누르고 언제나 그랬듯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곧이어 문이 닫히고 둔중한 소리를 내며 엘리베이터가 움직였다.

잠시후 문이열렸다. 난 익숙한 걸음으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복도를 걸어갔다.

그리고 초인종을 눌렀다.

대꾸가 없었다.

정말 낮잠을 자는게 확실했다.

난 도어노브에 키를 꽂아 넣고 돌렸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열쇠가 돌아가지 않았다.

이게 무슨 일이지? 키가 망가졌나?

난 몇번이나 키를 움직였다.

하지만 도어록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키를 뽑았다가 다시 끼워 넣으려는 순간 문에 붙어 있던 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611호.



우앗 이런 실수를… 611호였잖아. 내 방은 511호인데.

나 참 더위를 먹었나 층을 잘못 내렸구만.

난 혀를 끌끌차며 열쇠를 바지 주머니에 넣었다.

그 순간 앗하며 전율이 내 등뒤를 타고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611호?

그제서야 생각났다. 이 빌딩은 5층밖에 없다.

난 복도를 둘러 보았다.

내가 사는 층의 복도와 똑같은 구조.

하지만 방번호는 전부 6으로 시작하고 있었다.

뭐지 이거?



난 천천히 뒷걸음질을 쳤다.

이게 어떻게 된거지?

여긴 5층이어야 하는데….

무서워졌다.

그래서 슬금슬금 엘리베이터쪽으로 갔다.

그때 복도 저 끝에 한 여자가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복도의 조명이 어둑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내 쪽을 보고 있음에 틀림없었다.



그녀는 날 보더니 천천히 걸어 오기 시작했다.

난 온 몸의 신경이 삐죽섰다.

숨이 가빠오기 시작했다.

난 손을 뒤로 짚어 엘리베이터 버튼을 마구 눌렀다.

여자는 점점 더 나에게 다가 왔다.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난 얼른 엘리베이터안에 들어가서 미친듯이 닫힘 버튼을 눌렀다.

여자는 엘리베이터 문앞까지 와 있었다.

하지만 억지로 문을 열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닫히는 문 사이로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작은 키에 작은 얼굴에 둥글둥글한 퍼머 머리.

처음보는 얼굴이었다.



마침내 문이 닫히고 엘리베이터는 1층으로 향했다.

난 가슴을 쓸어내렸다.

쿠쿵 쿠쿵하는 규칙적인 소리와 함께 엘리베이터가 1층으로 내려갔다.

잠시 정적이 흐르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린다.

난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현관앞으로 나갔다.

어디선가 싸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추웠다.

이거 날이 갑자기 왜 이래.

난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와 엘리베이터 앞에 섰다.

정말 이상한 날이었다.

이게 왠 일일까 싶었다.

아까의 6층은 뭐지?

귀신하고도 사는 나였지만

아까의 6층에서 본 그 여자는 오싹하도록 기분이 나빴다.

헛걸 봤나?

난 입맛을 쩝쩝 다셨다.



엘리베이터를 다시 타야하나?

아니면 계단을 걸어 올라갈까?

살짝 고민이 되었다.



“실례할께요.”

그때 뒤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아, 예 예 죄송합니다.”

난 엘리베이터 쪽에서 몸을 피했다. 그러자 젊은 여자가 엘리베이터 앞에 선다.

깜짝 놀랐다 그 여자는 손혜승이었다.

“야, 손혜승 너 어디갔다 오는거야?”

손혜승은 이 계절에 안어울리게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었다.

미용실이라도 갔다왔는지 헤어스타일도 달라져 있었다.

그런데 나를 본 손혜승은 흠칫 놀라면서 뒷걸음질 쳤다.

“누구세요?”

“어이그 또 장난은... 그만해라.”

난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면서 말했다.

“누구시냐니깐요? 저 아세요?”

혜승의 목소리는 전에 들어본 적없이 칼이 서 있었다.

난 그녀를 보고 말했다.

"갑자기 또 왜 그래?"

“오빠! 오빠!!!!!”

혜승이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질렀다.

당황스러웠다.

“야, 너 왜 이래?”

내가 손을 뻗어 그녀를 만류하려하자

혜승은 갑자기 핸드백으로 날 내리쳤다.

“저리 안가!!!!”

또다시 들리는 앙칼진 목소리.

“뭐야, 왜그래 혜승아!”

뒤이어 왠 남자가 현관으로 뛰어 들어왔다.

“이 남자.. 이 남자가 아는 척 하면서 이상하게 굴어, 내 이름도 알어!!!”

혜승은 겁에 질린 얼굴로 그 남자 뒤에 숨었다.

“당신 뭐야?”

큰 키에 훤칠한 얼굴을 한 남자였다.

그는 대뜸 내 멱살을 잡았다.

“나..나…”

지금 이 상황이 도무지 이해되지 않았다.

혹시 신종사기?

혜승이 이제까지 나에게 사기친건가?

꽃뱀?

이 남자 기둥서방?

별별 생각이 다 들었다.



그런데 이상한 건 이 남자 역시 여름에 안 어울리는 외투를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고보니 현관의 공기가 꽤나 차가웠다.

“당신 이리 나와!”

그 남자는 내 멱살을 잡아 끌고 현관앞으로 나갔다.

그 남자의 자동차인지 헤드라이트가 현관을 향해 환하게 켜져있었다.

“혜승아 넌 빨리 경찰에 전화해.”

“아..아니.. 무슨…”

“너 뭐야? 스토커야? 이 새끼 너 오늘 제대로 걸린줄 알어.”

그 남자는 두 눈을 부라리며 말을 했다.

스토커?

“이 손이나 놓고 얘기…우우우욱!”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 남자는 내 목을 더 힘차게 틀어쥐었다.

숨 쉬기도 힘들었다.

잠시후 경찰차가 현관앞으로 들이닥쳤고

중년의 경찰관 두명이 나를 연행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타 본 경찰차였다.



난 썰렁한 파출소에 앉아 있었다.

“이름.”

“서승준인데요.”

“나이는?”

“스물여덟살인데요.”

“이봐 다시 물을께 나이는?”

“스물여덟.”

내 앞에 앉아 있는 경찰관은 한심하다는 듯 내 주민등록증을 책상위에 툭 던졌다.

“2011에서 1985을 빼봐. 얼마인가?”

“2011요? 왜 2011에서 빼요? 2013이지?”

경찰관은 날 빤히 쳐다 보다가 혀를 끌끌차더니 다시 물었다.

“주소는?”

“서울시 관악구 청룡 1길 아다지오 빌라 511호.”

"장난치지말고..."

"정말이예요. 저 거기 살아요."

“당신 스토커야? ”

“뭔 말씀이세요? 저 스토커 아니예요!”

경찰관은 주민등록증을 내 앞에 보여주더니 말했다.

“다시 말해봐.”

“아 이 주소요? 이건 이사 오기전에 살았던 주소예요.”

“다시 묻는다. 주소!”

“관악구 청룡1길...”

“아이씨...이 또라이..."

중년의 경찰관은 머리를 벅벅 긁더니 옆에 있던 젊은 경찰관에게 말했다.

“인적사항 좀 확인해, 이름 서승준, 성별 남, 나이 26세, 주소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난 어깨를 웅크리고 쭈그리고 앉아 있었다.

마음이 불안하기도 했고

또 입고 있는 반팔 티셔츠가 몹시 춥기도 했다.

여긴 또 왜 이렇게 추운거야.

난 파출소안을 여기저기 두리번 거렸다.

그러다가 카운터너머 책상위에 놓여 있던 데스크 캘린더로 내 시선이 꽂혔다.

2011년 10월 31일.

난 온몸의 털이 곤두서는 것 같았다.

2011년 10월 31일?

2013년 8월 9일이 아니고?

이건... 말도 안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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