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7부

사랑은 어디로 - 7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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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상황파악은 안되었다.

꿈인지 뭔지는 알 수없었지만

확실한 것은 이 상황의 설정이

2013년 8월 9일이 아니라 2011년 10월 31일이라는 것이다.

그것이 진짜인지 어쩐지는 제쳐두고라도 말이다.



난 두 손으로 뺨을 찰싹찰싹 때렸다.

정신차려야한다.

정신차려야 한다.

“서승준씨.”

중년의 경찰관이 내 이름을 부른다.

“예?”

“아까 그 여자분하고는 어떤 사이야?”

나는 다시 상황을 추스렸다.

지금이 정말 2011년 10월 31일이라면

손혜승은 살아있다.

그리고 내가 살던 그 집에 살고 있다.

하지만 그녀는 날 모른다.

그런데 내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으니 놀란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난 지금 손혜승을 스토커한 혐의를 받고 있다.

내가 2년뒤 귀신이 된 그녀와 알고 지낸 사이라고 말을 해도

어차피 믿어줄 사람은 하나도 없다.

괜히 허튼 소리했다가 일이 커지면

경찰서에서 나가지 못하게 된다.

우선 이 상황을 빠져나가야 한다.



난 고개를 꾸벅 숙이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정말 죽을 죄를 지었다는 듯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

“뭐가 죄송하다는 거야?”

“사실은 그 여자, 저와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그런데 당신이 거기 왜 있었는데?”

“제가 그냥 일방적으로 좋아했습니다.”

난 금방이라도 울것 같은 목소리를 냈다.

“그 여자는 당신 모른다던데?”

“네 그럴겁니다. 혼자서 좋아했으니까요.”

“그 집 현관에선 뭐 한거야?”

“그냥 얼굴이라도 한 번 보려고.. 정말 그것뿐입니다.”



이게 스토커랑 뭐가 다른가?

하지만 같은 얘기라도 말투만 조금 바꾸면

사랑의 열병을 앓는 가엾은 청년의 애절한 사연으로

들리게 만드는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면 안되는 줄 알면서도… 너무 보고 싶어서…”

난 두 손으로 얼굴까지 감싸쥐었다.

“그 여자분에겐 정말 죄송하게 됐습니다.”

스토커들은 대부분 자기는 잘못이 없다고 그런다

그러므로 반성의 빛을 아주 역력하게 보여주는게

스토커 혐의를 벗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포인트였다.

“다시는 이런 일이 없을 것을 약속드립니다.”

나는 꺼이꺼이 울기까지 했다.

그 만큼 한시라도 빨리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다.

내 연기가 먹혀 들기 시작했는지

그 경찰관의 표정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비싼 밥 먹여 키운 아들이 이렇게 사는 거 알면 어떠실 것 같아?”

난 더욱 소리를 내며 꺼이 꺼이 울었다.

“그냥 마지막으로 얼굴 한 번 보려고 그랬을 뿐입니다. 다시는 안그러겠습니다.”

“정말 앞으로 이러지 않겠다고 약속할 수 있어?”

“네 물론이죠. 하늘을 걸고 약속드리겠습니다.”

“어이구 하여간…”

경찰관은 서랍에서 뭔가 종이를 꺼내더니 내 앞에 내밀었다.

“오늘은 별일 있었던 것도 아니고 해서 이만 하겠는데 대신 각서나 하나 씁시다.”

난 종이에 서둘러서 각서를 쓰고 지장을 찍었다.

“그런데 이 가을 밤에 옷차림이 그게 뭐야?”

2013년 8월9일 밤에 회사에서 퇴근하던 나는

얇은 양복바지에 반팔 와이셔츠만 입고 있었다.

“제가 더위를 좀 잘 타가지고…”

“자 그럼 가보슈.”



경찰서를 빠져나온 나는 크게 한 숨을 쉬었다.

난 주머니에서 아이폰을 꺼냈다.

어느새 화면의 날짜가 바뀌어 있었다.

2011년 10월31일.

밤날씨는 마치 겨울처럼 추웠다.

난 덜덜 떨면서 2호선 서울대입구역으로 서둘러 내려갔다.

다시 한번 상황을 정리해야 했다.

2011년 10월이라면 난 학생이다. 4학년이다.

주희영과 여전히 사귀고 있는 사이다.

그리고 손혜승은 아나운서를 지망하는 스무살 대학생일 것이다.

아마도 아우디를 타고 다닌다는 그 남자랑 사귀고 있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혜승이 오빠라 부른 그 남자,

그 오빠가 아우디의 그 남자일런지도 모른다.



난 아이폰 캘린더를 뒤로 돌려

2011년 10월31일 전후의 스케쥴을 살펴봤다.

그리고 가방에서 다이어리를 꺼내

2011년 10월 31일의 상황을 적어 내려갔다.

그렇다면 내가 살고 있는 집은 봉천동에 있는 그 집이 아니라

주민증에 적힌 주소, 동대문구 제기동에 있는 그 자취방이라는 얘기가 된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희영이었다.

난 가슴이 뛰었다.

“나야 승준아.”

나야 승준아…

전화를 받으면 희영은 언제나 그렇게 말을 시작했다.

가슴이 뭉클해져왔다.

“아.. 그래..”

“오늘 왜 이렇게 전화를 안받어? 어떻게 된거야?”

“아…… 글쎄…..”

“혹시 그것때문이야 아이폰 데스그립?”

“아.. 응..응 아마도 그런 것 같어.”

난 엉겁결에 말을 얼버무렸다.

“오늘 공부 많이 했어?”

“응 공부?

그러고 보니 생각났다.

당시 나는 다음 해 3월에 있을 대기업 공채를 목표로

취직시험 준비를 하고 있었다.

물론 삼성을 필두로 현대, LG, 포스코, 한국IBM등등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회사 입사시험에서 줄줄이 고배를 마시고

지금 일하는 중소기업에 겨우겨우 들어간 것이 현실 속에서

내가 손에 든 결과였다.

그런데 지금 나는 그 전의 시점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



“승준아, 자꾸 이런 얘기해서 미안한데… 너 취직에 우리 미래가 걸려있는거 알지?”

그랬었다.

그 즈음의 희영의 입버릇이었다.

내 취직에 우리들의 미래가 걸려있다고.

“물론 난 승준이 믿으니까, 잘해낼거야!”

잊고 있었다. 희영의 목소리가 이렇게 따뜻했었는지.

“고마워.”

“주중엔 좀 힘들지만 주말에는 데이트하자. 우리 춘천갈까?”

그랬었다.

토요일에 희영이 차를 타고 춘천까지 드라이브 갔었다.

갑자기 가슴이 먹먹해왔다.

이제까지 잊고 있던 기억들.

내가 잃어버렸다고 생각했던 것들이

갑자기 내 품으로 다 돌아온 것이다.

“그럼 토요일에 가는게 어떨까? 그날 출근하던가?”

그녀가 그 주 토요일에 출근하지 않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다.

그냥 물어본 것일 뿐이다.

“아니, 이번 주는 출근안해.”

“잘됐네. 그럼 토요일에 만나자.”

“응, 그럼 토요일까지 공부 열심히하고. 또 연락할께. 사랑해.”

“응 나도 사랑해.”



전화를 끊고나자 심장이 미칠듯이 뛰기 시작했다.

내가 꾸고 있던 모든 꿈들이

깨지지 않은채 고스란히 나에게 다시 돌아와 있었다.

이게 정녕 꿈이 아니라 현실이란 말인가?



난 전철에서 내려 예전에 살던 자취방까지 미친듯 뛰었다.

예전 그대로였다.

하지만 열쇠가 없었다.

내 손에 남아 있는 열쇠는 2013년 8월9일로부터 가지고온

봉천동 원룸의 열쇠였다.

하지만 문제될게 없었다.

난 초인종을 눌렀다.

“누구세요?”

자취방 주인집 아주머니의 목소리였다.

“아주머니 저 승준이예요. 죄송해요 열쇠를 잃어버렸어요.”

“아니 그걸 또 잃어버리면 어쩌자는거야.”

아주머니는 투덜거리면서 문을 열어주었다.



뽀글뽀글한 주인집 아주머니의 퍼머 머리를 본 순간

이것이 더 이상 꿈이 아니라 현실임을 깨달았다.

“내일까지 열쇠 못찾으면 얘기해. 새로 만들어야 되니깐.”

“네, 죄송해요 아주머니.”



아주머니 가 열어준 방에는 예전의 내 삶의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스탠드가 놓여 있는 책상. 그 위에 놓여 있는 두툼하기 그지없는 컴팩 노트북.

책상위에 쌓여 있는 입사시험 문제집들.

벽에 걸려 있는 옷들.



난 힘없이 방바닥에 주저앉았다.

눈물이 났다.

어깨가 들썩이기 시작한다.

난 울기 시작했다.

눈물을 그리고 울음을 도저히 멈출 수 없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2013년 8월 9일의 저녁까지의 나의 삶은

손에 쥐고 있던 것을 계속 잃어가던 삶이었다.

취업시험에 실패하면서 미래를 잃었고

미래를 잃으면서 사랑을 잃었다.

그리고 사랑을 잃으면서 나는 목숨을 잃어버리기로 작정했었다.

그러다 겨우 건진 목숨하나 걸머 쥐고 힘들게 언덕길을 오르던

2013년의 8월 9일이었다.

그랬던 내가 아직 지킬것이 있었던 시간으로 되돌아 온 것이다.

난 계속 몸을 들썩이면서 흐느꼈다.



유일하게 바뀐게 있다면 불어난 내 몸이었다.

2년동안 난 체중이 10킬로 이상 불어 있었다.

셔츠를 벗고 벽에 걸려 있는 가을옷들을 입어보았지만

너무 꽉끼어 입을 수가 없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옷부터 사야할 것 같았다.



난 이불 위에 벌렁 누웠다.

밤이 늦었다.

피곤했다.

하지만 잠을 잘 수 없었다.

흥분때문에 아드레날린이 너무 많이 분비된 탓도 있을 것이고

잤다가 다시 깼을 때 눈 앞의 모습이 사라지는게 두렵기도 했다.

난 아이폰 캘린더를 다시 열어

2011년 11월 1일 내가 무얼 했는지 살펴 봤다.

거기에 적혀있는 스케쥴에 따르면

나는 그날 낮에 하나 밖에 없는 교양과목 수업을 듣고

도서관에서 토익공부를 하다가

저녁에는 학교 세미나실에서 열리는 스터디에 나갔다.



솔직히 말해 그때는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았다.

책상머리에 앉아서 공부해야지 공부해야지 생각만 많이 했지

실제로 집중해서 공부하진 못했었다.

그 결과가 2013년의 나의 삶이었다.

그것을 되풀이할 수는 없었다.

미래를 바꾸고 싶었다.

그러기 위해선 예전의 내 모습으로 살아서는 안되었다.

새로운 내가 되어 다시 돌아온 이 기회를 붙잡아야만 했다.

나는 두 눈을 감았다.

계속 뛰는 심장 소리가 귓가에 들려오는 듯 했다.

쿠쿵 쿠쿵 쿠쿵.

나는 미래를 바꿀 것이다.



쿠쿵 쿠쿵 쿠쿵.

심장의 소리가 주기적으로 들려왔다.

그런데 그 소리가 점점 차가운 금속성 마찰음으로 변해가고 있었다.

더 이상 그것은 내 심장의 고동소리가 아니었다.

몸도 조금씩 떨리는게 느껴졌다.

난 눈을 떴다.

이상한 일이었다.

난 엘리베이터 안에 서 있었다.

이윽고 엘리베이터가 멈추고 문이 열린다.

난 등골이 오싹해 졌다.

문 앞에 그 여자가 서 있었기 때문이다.

존재하지 않는 6층의 복도끝에서 만난 그여자.

작은 키에 작은 얼굴에

둥글둥글한 퍼머 머리를 하고 있던 그 여자.



“서승준씨.”

그 여자는 낮으면서도 차가운 목소리로 날 불렀다.

“누구시죠?”

“저, 김지연이라고 해요.”

“김지연씨? 죄송하지만 제가 아는 분 같지 않은데…”

“그럴거예요. 어제 엘리베이터앞에서 뵌게 처음이니까?”

“어제?”

“기억안나세요? 6층 엘리베이터.”

“그게 어제였던가요?”

“지금 시간이 밤 12시를 넘었으니까 어제는 어제죠.”

그 여자는 반듯하게 선채 무표정하게 말을 이어갔다.

“어떻게 저를 아시죠?”

“저요? 손혜승씨의 선임이니까요.”

“혜승의 선임?”

"그렇다면?"

“네 제가 그 목 매 죽은 여자예요.”

그녀는 여전히 무표정했다.

“저에게 무슨 볼일이신지?”

난 김지연에게 되물었다.

“한가지 알려드릴 일이 있어서요.”

김지연은 사무적으로 대답했다.

“뭘요?”

“2011년 10월 31일이 2013년 8월9일의 과거는 아니라는 사실요.”

“그게 무슨 뜻이죠?”

“2013년 8월9일이 2011년 10월 31일의 미래는 아니라는 얘기죠.”

“지금 말장난 하러 여기 오신겁니까?”

“아니요 전 지금 진지해요.”

“설명은 사람 알아들으라고 하는게 아닌가요?”

“제 말주변이 부족해서 죄송하네요.”

김지연은 반듯이 서서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난 한숨을 쉬었다.

“이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면 2013년인가요?”

“아니요 2011년요.”

“그럼 됐어요.”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릴께요.”

“뭔데요?”

“2011년은 당신이 아는 과거가 아니고 2013년 역시 당신이 알고 있는 미래가 아니예요.”

난 아무 말 없이 김지연을 바라 보았다.

그녀 역시 눈도 깜빡하지 않고 나를 쳐다 보고 있었다.

“그럼 이만 실례하겠습니다.”

난 그녀에게 인사를 하고 닫힘 버튼을 눌렀다.

문이 닫힌다.

김지연은 그날 6층에서처럼 닫히는 문 사이로 날 쳐다보고 있었다.



“허억….”

눈을 뜬 나는 허겁지겁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고선 안도의 한숨을 내 쉬었다.

봉천동의 원룸이 아니라 제기동의 자취방이었기 때문이다.

난 몸을 일으켰다.

새벽 2시.

온 몸이 땀으로 젖어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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