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9부

사랑은 어디로 - 9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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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집앞에 내려주면서

희영이 내 입술에 키스를 했다.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고.”

“응 그래 너무 무리하지 말고 내일 하루는 푹 쉬어.”

희영이 손을 흔들면서 차를 후진시켰다.

희영의 차가 골목길을 돌아 나가고 나서야

난 자취방으로 들어왔다.



오늘로서 2011년으로 돌아온지 엿새가 되었다.

지난 일주일간 나는 흥분해 있었다.

2년이라는 시간이 되돌려졌다는 사실에.

앞 뒤 잴것도 없이 전력으로 내달리기만 했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존재하지 않는 6층이 왜 내 눈앞에 펼쳐졌는지

그곳에서 나를 보고 있던 김지연이라는 여자는 누구인지

왜 1층으로 내려왔을 때 시간이 2011년으로 되돌려졌는지

김지연은 왜 다시 내 꿈 속에 나타나 밑도 끝도 없는 소리를 했는지.

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난 것일까?

이상하게 여겨야 마땅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렇게 희한한 일이 나에게 일어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의문없이 이 상황을 받아들였던 것이다.

그만큼 나는 흥분해 있었다.

미래를 바꿀 기회를 얻었다는 것.

그로 인해 희영을 되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

머릿속에는 오직 그 생각 하나 뿐이었다.



그런데 오늘 희영과의 데이트.

무엇인가 어색했다.

그녀와의 드라이브.

그녀와의 섹스.

희영은 나를 보고 여느때와 다르다고 그랬다.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다른 점?

글쎄, 뭐가 다른 것일까?

여전히 손에 쥔 것 없는 그냥 그런 대학생임에는 변함이 없는데

그녀는 뭘 보고 내가 변했다고 그러는 것일까?

오늘 하루 희영이 나를 대하는 태도는

예전의 그것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내 자신의 희영에 대한 감정 역시 알 수 없었다.

난 그녀를 되찾기 위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

아니면 그녀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미래를 바꾸려고 하는 걸까?



그리고 손혜승.

오늘 살아있는 그녀가 나를 스쳐지나갔다는 사실이 다시 생각났다.

얼마 되지는 않았지만 그녀와 함께 지냈고

섹스까지 한 사이지만

혜승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얼마 없었다.

죽었을때 나이가 스물한살이었다는 것

그녀 말에 의하면 가까운 대학에 다니고 있었다는 것.

아나운서가 되고 싶었다는 것.

그리고 아우디를 모는 남자를 좋아했었다는 것.

그것이 전부였다.

혜승은 2011년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그녀의 미래는 어떻게 되는걸까?

2012년 2월에 결국 자살하게 되는걸까?

그녀가 자살할 것을 알고 있는 나는

무엇인가 해야하는 것일까?



머릿속을 맴돌던 생각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왜 난 2011년으로 돌아온 걸까?

우연일까?

아니면 필연적으로 일어난 인관관계의 결과일까?

행운일까?

아니면 재앙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난 잠을 이룰 수 없었다.



희영이 일요일엔 푹 쉬라고 했지만

난 쉴 수 없었다.

일요일에는 토익과 그룹 디스커션 스터디가 있었기 때문이다.

쉬는 날이라는 것은 없었다.

그만큼 대학 졸업반에게 취업이라는 것은 목숨을 건 일이었다.



“고3때는 대학만 들어가면 고생끝인 줄 알았는데…”

학교 도서관 뒤에서 후배녀석은 담배를 피우며 말했다.

“대학4학년이 되도 인생 달라지는 거 하나도 없네요 씨바…”

녀석의 담배연기가 부쩍 쌀쌀해진 가을 하늘 위로 날려간다.

“아.. 정말 공채에만 붙으면 죽어도 한이 없을 것 같아요.”

후배의 눈빛은 절실했다.

정말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 같은 표정이다.

“공채에 붙고난 다음엔?”

“네?”

“그 이후엔 뭘 위해 살건데?”

스스로도 의외였다. 내가 왜 이런 질문을 했는지…

그것은 손혜승이 나에게 던진 물음이 아닌가?

“참, 형도… 그런 고민은 공채에 붙고나서나 하는 거 아니유…”

후배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취직 못하면 그런 고민을 할 권리조차 못얻잖아요.”

취직 못하면 그럴 권리 조차 없다고?

사치스런 질문이라고?

그래 틀린 말은 아니다.

난 2013년의 나의 삶을 머릿속에 떠올렸다.



“담배 하나만 줄래?”

“형 담배 피웠었수?”

“그냥 … 나도 한대 피워보자.”

“이제부터 배워 볼 생각이라면 말리고 싶소 몸버리고 돈버려요.”

후배는 담배를 건네더니 불을 붙혀주었다.

담배는…맛이 없었다.

“이런 걸 왜 부러부러 돈 주고 사서 피우냐?”

난 콜록대며 얼굴을 찌푸렸다.

“그러길래… 안 피울거면 불끄고 나 줘요. 장초라도 살리게.”

“됐어 임마.”

난 콜록대면서 담배 한대를 다 피웠다.



스터디에 모인 애들은 뭐든지 필사적이었다.

예전의 나는 이런 모임에 참가한 적이 없었다.

나는 한숨이 나왔다.

널널하게 살던 내가 이런 애들과 시험에서 붙었으니 이길리가 없었다.

난 뭘하면 살았던 걸까.

내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이렇게 필사적으로 매달리는 취업준비생들이

다른 한편으로는 안쓰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그들의 인생은, 그들의 꿈은 내년 상반기에 멈춰있었다.

앞으로 남은 시간 겨우 서너달.

그이후의 꿈은 유예되어 있었다.

석달후 공채시험에 붙어

그 다음의 꿈을 꿀 권리를 획득하고 나면

그들은 어떤 꿈을 꾸기 시작할까?

아니 그 이후의 꿈을 꿀 수 있기나 한 걸까?



매미가 생각났다.

칠년간 땅속에서 칠일간의 지상을 꿈꾸며 사는.

그들에게 여드래의 일을 묻는다는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팔일째의 매미.

혜승이 들려주었던 얘기가 생각났다.

난 아이폰을 꺼내 검색해 보았다.

팔일째의 매미.

혜승이 죽기전에 봤다던 일본영화.

팔일째의 매미의 원작은 소설이었다.

불륜상대의 아기를 훔쳐 도망친 한 여자의 도망극이다.

작자는 가쿠타 미츠요.

일본어는 물론이요 일본에 대해서도 아는게 없는 나로서는

처음듣는 이름이었다.

소설도 영화도 보지 못한 나로서는

아기 유괴범과 팔일째의 매미가 어떤 메타포로 이어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혜승이 들려주었던 팔일째의 매미의 얘기만큼은

기억속에 뚜렷하게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지금 스터디룸에서 열기를 뿜어가며

필사적으로 공부하고 있는 멤버들을 보면서

난 그 매미를 생각하고 있었다.



“오늘도 공부하러 학교 나온거야? 너무 무리하는거 아냐?”

전화기 너머의 희영의 목소리엔 걱정이 잔뜩 묻어 있었다.

“뭐 이정도 가지고…”

“그래도 승준이가 그룹디스커션 스터디까지 하다니 좀 놀랐는데.”

“왜?”

“너 그런거 딱 질색이잖아. 사람들하고 디스커션하는거.”

“내가 그랬었나?”

내가 에전에 그랬었는지 조차 기억에 없었다.

“나 지금 학교로 갈까?”

희영이 말했다.

“학교에 와서 어쩌려구?”

“어쩌긴, 승준이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데 응원해야지.”

어색했다.

예전의 희영은 내가 제대로 공부하고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를 했었다.

하지만 목소리와 말투는 언제나 사무적이었다.

내가 만나고 싶다고 말을 해도

그녀는 완곡하게 거절했었다.

평일에는 공부하라고, 주말에나 시간이 난다고.

그랬던 그녀가,

어제 만났던 그녀가,오늘 또 만나자고 그러는 건,

이즈음의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었다.



“마음만은 고마운데, 오늘은 시간이 안될것 같아.”

“바쁜거야?”

“응 디스커션 스터디가 생각보다 길어질 것 같아.”

“그렇구나. 내가 방해하면 안되지. 너무 보고싶지만 말야.”

희영은 아쉬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시간이 없다는 건 거짓말이었다.

그룹디스커션 스터디는 예진작에 끝났다.

예전같으면 희영에게 한달음에 달려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내 발걸음이 다른 곳으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전철을 내린 곳은 서울대입구역.

그렇다, 나는 봉천동으로 돌아온 것이다.



2011년의 나에겐 낯선 곳이었을 그 길을

나는 익숙한 발걸음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을의 낮은 역시 짧았다.

해가 뉘엿뉘엿해진 골목길로 어둠이 내려앉고 있었다.



난 언덕길을 걸어올라갔다.

언제나처럼 그 자리에 서 있는 5층 빌딩.

이 쪽에서 보이는 그 창문.

그 창문의 불은 꺼져 있었다.

원룸으로 향하던 내 발걸음은

조금씩 조금씩 느려졌다.

그러다가 멈추었다.

난 걸음을 멈추고 5층의 그 방 창문을 올려다 보았다.

무엇인가 보였기 때문이다.



어두운 하늘.

어두운 골목.

어두운 창문.

어렴풋한 모습이지만

난 창가에 누군가가 서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곳은 혜승의 방이지만

서 있는 이는 혜승이 아니었다.

작은 키.

작은 얼굴.

둥그런 퍼머 머리.

그 여자다.

김지연이다.



난 꼼짝도 하지 않고 그녀를 쳐다 보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는 않았지만

그녀 역시 날 내려다 보고 있는 것 같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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