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어디로 - 11부

사랑은 어디로 - 11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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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질 더러운건 여전하구만.”

난 볼을 타고 흘러내린 피를 손으로 닦았다.

피비린내가 슬쩍 풍겨왔다.

아직 피가 멎진 않았지만

다행히도 머리에 난 상처가 그리 크진 않은 것 같았다.



“도대체 뭐하는 인간이니?”

혜승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사람 다치게 했으면 미안합니다가 먼저 아닌가?”

나는 그녀에게 말했다.

“그건 미안하게 됐는데… “

혜승은 나를 노려보며 질근질근 씹듯이 말을 했다.

“이렇게 자꾸 나타나서 헛소리를 하니 참을 수 있어야지…”

“하긴… 내가 하는 말들이 한방에 믿어지면 그게 더 이상하지.”

“도데체 목적이 뭐야?”

“목적이라…. 나도 잘 모르겠다.”

정말이었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지.

만나고 싶다고 전화까지 한 희영을 제쳐두고

여기까지 와서 이러고 있는 이유를 나도 알 수 없었다.

“자기도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혜승은 팔짱을 낀 채 말을 했다.



“아마도 이 말이 하고 싶어 왔을꺼다.”

난 남의 일 얘기하듯 말했다.

“뭔데?”

“죽지마라.”

“뭐라구?”

“죽지마라고, 부탁이니까.”

“한번만 더 그 따위말 하면 경찰 부른다.”

혜승은 날 노려보며 말했다.

“경찰이라… 그렇게 되면 좀 문제가 되긴 되겠다. 지난번 각서도 썼는데…”

난 땅에 떨어져 있던 그녀의 갤럭시 S2를 집어들었다.

홈버튼을 누르자 화면이 켜진다.

“유리는 깨졌지만 전화는 되는 모양이다.”

난 혜승에게 전화를 건네주었다.

“죽고나서 너 후회 많이했거든.”

“한번만 더 떠들면 정말 경찰부른다.”

“나 정말 진지하게 말하는 거야.”

난 혜승을 똑바로 쳐다 보았다.

“부디 죽지마라. 언젠가 만나면 이 말을 꼭 하고 싶었어.”

혜승은 말없이 나를 그냥 바라보기만 했다.

난 혜승으로부터 몇발자욱 뒷걸음질친후 뒤돌아섰다.



머리에 난 상처가 욱신거렸다.

피는 더 이상 흘러내리지 않았다.

외투에 몇방울의 피가 묻긴했지만

어디가서 사건 일으킨 놈으로 오해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퇴근시간 무렵의 지하철 2호선은 지옥처럼 붐볐다.

회사가 선릉역 근처에 있었기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봉천동으로 이사온 것을 제일 후회할 때가 아침 저녁으로 지하철 탈 때였다.

난 사람들에 떠밀려 차창에 얼굴을 바짝 붙힌채

아무것도 보이지않는 2호선 차창의 깜깜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여기가 정말 내가 사는 세상일까?

여기가 정말 내가 2년전에 살았던 그 시간일까?

김지연이 한 말이 다시 생각났다.

2011년 10월31일은 2013년 8월9일의 과거는 아니다라는.

‘과거가 아니다’ 가 아닌 ‘과거는 아니다’라는

그녀의 어법이 왠지 마음에 걸렸다.

나는 눈을 감았다.



다음날 나는 종로에 있는 어학원에 앉아 있었다.

나의 최대 숙적 토익때문이었다.

나는 군대갔다 온 남자동기들 보다도 졸업이 1년 늦었다.

캐나다에 어학연수를 갔다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의 영어실력은 바닥을 기고 있었다.

1년동안 쏟아부은 돈이 어디로 갔나 싶을 정도로.



어학연수라는게 그렇다.

독한 마음먹고 공부하지 않는 이상

몸만 캐나다에 있을 뿐, 생활은 한국 그대로가 되고 만다.

주위에 모인 사람들도 한국사람.

그 사람들이 모여서 한인식당 가서 밥먹고

한인이 운영하는 노래방에 가서

한국노래 부르면서 하루를 보낸다.

피같은 아버지의 명예퇴직금을 쪼개서

난 그렇게 1년을 살았었다.



저녁타임이 끝나고 학원앞에 앉아 캔커피를 마셨다.

이제는 겨울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날이 추워져 있었다.

난 따뜻한 캔을 두 손으로 부여잡고

조금씩 조금씩 뜨거운 커피를 목안으로 넘기고 있었다.

그때 전화가 울렸다.

처음 보는 핸드폰 번호였다.

“여보세요?”

“나야 손혜승.”

손혜승? 그녀가 내 핸드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단 말인가?

“어,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어?”

“지난번 파출소에 손을 좀 썼지.”

지난번 파출**면 내가 스토커 혐의로 끌려간 곳을 말하는 것이리라.

“내 동의도 없이 개인정보를 파헤쳤다 이거군?”

“자세한 내막은 알 필요없고…”

혜승이 말을 끊었다.

“내 질문에 하나만 대답해 줄래?”

“뭔데?”

“내가 뭐라고 대답하디?”

“갑자기 뭔 밑도 끝도 없는 말이야?”

“팔일째의 매미.”



“아, 그거…”

난 헛기침을 한 번한 후 전화기를 고쳐 잡았다.

“죽기전의 손혜승은 이렇게 생각했다더군. 혼자살아남느니 같이 죽는게 낫겠다고.

그리고 죽은 후의 손혜승은 어렇게 말했어. 8일째의 아침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수화기 저편의 혜승은 말이 없었다.

나 역시 아무 말 없이 전화기만 붙잡고 있었다.

“지금 혹시 만날 수 있어?”

혜승이 말했다.

“나 지금 종로에 있는데 너가 어디에 있는가에 따라 얘기가 달라지지.”

“재밌네. 나도 지금 종로인데.”

“그래? 혹시 일본어때문에?”

“어떻게 알았어?”

“그 얘기도 들었다. 죽은 너로부터.”



우리는 청계천에서 만났다.

둘이 다리 위에 나란히 서서 졸졸거리고 흐르는

청계천 물을 바라보고 있었다.



“난 여전히 널 또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

혜승이 말했다.

“2013년에서 왔다는 둥, 내가 자살했다는 둥… 미친 소리지.”

“그럼날 왜 보자고 한거야?”

“너가 말하는게 대부분 헛소리긴 한데 몇 가지 맘에 걸리는게 있단 말야.”

“마음에 걸린다….?”

“어제 너가 던져 준 열쇠 봤을 때 조금 놀랐어.”

혜승은 주머니에서열쇠 두개를 꺼냈다.

하나는 그녀의 것인 듯 했고 또 하나는 내가 어제 그녀에게 던져 준 것이었다.

“처음 이사왔을 때 자물쇠 바꾸겠다고 그러니까 아줌마가 안된다고 그러더라구.”

“그 퍼머머리 아줌마.”

“주인 아주머니 알아?”

“거기서 살았다고 그랬잖아.”

혜승은 여전히 못믿겠다는 듯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런데 내가 고집을 피워서 바꿨지. 돈도 내가 내고. 여자 혼자 사는데 불안하잖아.”

“그런데?”

“그런데 너가 이 열쇠를 떡 하니 들고 나타난거야.”

“딤플키 복제 안된다고 했는데 말이지…”

“응, 뭔가 된통 당했구나 싶었어. 엄청난 스토커한테.”

혜승은 열쇠를 들여다 보며 말했다.

“게다가 내 방에 대해서 다 알고 있잖아… 에어컨 골드스타 얘기할때는 소름까지 돋더라구.”

난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뭔가 집안에 도청장치나 몰래카메라라도 있는 줄 알았어. 그런데 말야…”

“그런데?”

“너가 갑자기 이상한 소리를 하는거야.”

“이상한 소리?”

“내가 남들에게 절대로 한 적이 없는 얘기. 내 맘속에만 있던 얘기.”

“아나운서 얘기? 아우디 그 남자? 아니면 팔일째의 매미?”

“셋 다.”



혜승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말을 했다.

“너 그것들 어떻게 안거야?”

난 한숨을 내 쉬었다.

“어제도 얘기했잖아. 2년 뒤의 너로부터 들었다고.”

“나 내년에 자살한다며?”

“그러니까 살아있는 너가 아니라 이미 죽은 너로부터 들었다고.”

혜승이 쾅하고 발을 굴렀다.

“이래서 내가 헛갈린단 말이야!!! 어디까지 너 얘기를 믿어야 하냐고!!!”

혜승은 소리를 질렀다.



그 순간 문득 생각이 난게 있었다.

난 아이폰을 꺼내 사진앨범을 열었다.

이 아이폰4는 내가 2011년부터 써왔던 것이다.

난 손가락을 움직여 수백장도 넘는 사진들을 넘기다

한 장의 사진에서 스크롤을 멈췄다.

창가에 놓인 책상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찍은 사진이었다.

난 그 사진을 혜승에게 보여주었다.

“이 창문 낯익지 않아?”

혜승은 내 아이폰을 받아 들여다 보더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거.. 우리집 창문이잖아…”

“맞어.. 그런데 그 앞에 놓인 책상은 못보던 걸꺼야. 내가 취직기념으로 산 거거든.”

혜승은 그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이 사진은 내 예전 여자친구가 찍어 준거고.”

그녀는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아이폰을 건네주었다.

“이것도 뭐 조작한거라고 따진다면 난 더 할 말이 없어…”

난 아이폰을 주머니에 넣고서는 다리 난간에 팔꿈치를 기댔다.



“좋아… 그래 미친척하고 한 번 믿어 보자. 너가 미래에서 온 여행자라고 치고.”

혜승 역시 몸을 앞으로 내밀면서 다리 난간에 기대었다.

“그래 귀신이 된 내가 왜 너한테 그런 얘기를 한거야?”

“여자친구에게 청혼했다가 거절당했어. 그 여자 돈 많은 남자랑 결혼했고.”

난 구두 뒷굽을 툭툭차면서 말했다.

“그녀가 결혼하던날 수면제를 먹었지. 그런데 안 죽었다는 얘긴 어제 했지?”

“응.”

“반쯤 죽었다가 깨어났어. 그러고 나니까 너, 아니 죽은 너가 보이기 시작하더라.”

“내가 죽어서도 그 집에 살고 있었다는 얘기야?”

“응, 나도 놀랬지. 그래서 물었어 누구냐고. 그랬더니…”

“한승연”

“한승연”

혜승과 내 입에서 동시에 같은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쳐다 보았다.

혜승은 청계천쪽으로 다시 고개를 돌리더니 말했다.

“왠지 네가 하는 말들이 거짓말은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기 시작한다.”

혜승은 웃고 있었다.

“그거 내 버릇이거든. 친구들이 썰렁하니까 하지 말라고 그러는…”

“사실 한승연을 좀 닮긴 닮았잖아.”

“그래서 그 다음엔?”



“내가 자살기도하는 걸 지켜보고 있었데. 말리고 싶었다고 그러더라구.”

“말리면 되잖아.”

“그때는 내게 귀신이 안보였어. 말릴래도 말릴 길이 없었지.”

“자, 임사체험 하고 났더니 귀신이 보이더라 그런 얘기인가?”

“그런 모양이야.”

“그럼 이 주위는 어때? 귀신 없어?”

“모르겠어 귀신인지 사람인지 구분이 안가. 귀신이라고 머리에 뿔난게 아니니까.”

“그건 별로 재미없군.”

“내 자살을 말리고 싶어한 이유를 얘기하면서 아나운서랑 아우디 얘기를 했어.”

“내가 그 얘기를 너한테 했다구?”

혜승은 씁쓸하게 웃고 있었다.

“나 결국 돈없어서 여자한테 채였거든. 하류인생이라는 얘기까지 듣고…”

혜승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너가 그러더라. 자기도 상류사회로 가고 싶어서 아나운서를 꿈꿨다고.”

“내가 어제 너를 만나고 제일 놀랬던게 그거였어.”

혜승은 머리칼을 뒤로 쓸어 넘기더니 말했다.

“아나운서 아카데미 다니다 보면 왜 아나운서되려고 하느냐는 질문을 백만번도 더 받아.”

난 혜승을 물끄러미 바라보며 얘기를 들었다.

“멋들어진 대답이 백만개도 더 준비되어 있지. 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있는 남자잡아서 상류층으로 가고 싶다는 것. 그게 진짜 이유였거든.”

혜승은 풋하고 웃었다.

“그런 속물근성 풀풀나는 냄새를 어디가서 하겠니? 내 이미지도 있는데.”

나도 그녀를 따라 웃어 보였다.

“그건 그렇고, 이적의 사랑은 어디로는 왜 갑자기 부른거야? 그 노래 실력에.”

“내가 말했잖아. 너가 그 아우디 남자 얘기를 한 다음에 갑자기 그 노래를 부르더라고. 진짜 처량하게…”

“그랬구나.”

혜승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 토요일에 그 남자랑 춘천에 드라이브를 갔었어.”

지난 토요일이라면 내가 차에 탄 혜승을 목격한 바로 그 날이었다.

그녀 역시 춘천에 갔다 왔던 것이다.

“말이 드라이브지… 정말 죽고 싶은 기분이었어.”

“왜?”

“내가 그의 여자친구가 아니라 여러 여자 중의 하나라는 사실을 그날 본의아니게 알고 말았거든.”

혜승이 어깨를 움찔했다.

“기분 진짜 더러웠지. 그런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구.”

혜승은 어깨를 잔뜩 움츠린채로 말을 했다.

“그오빠에게 어떻게 된 일이냐고 따질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하고 넘어가야 할 것인지 선택해야했어.”

그녀도 하이힐 뒷굽을 들더니 지면을 가볍게 툭툭하고 찼다.

“결국 모른척하기로 했지. 지금 손에 쥐고 있는 걸 잃기 싫었거든.

그런데 그 때 하필이면 라디오에서 그 빌어먹을 노래가 나오는거야.”

혜승은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그런 노래 있는 줄 그날 첨 알았다. 그런데 가사가 너무 너무 엿같은거 있지.

듣고 있자니 정말 기분 거지같아지더라구.”

혜승은 코를 몇번 찡긋거리더니 애써 웃었다.

“그런데 그 노래를 갑자기 나타난 왠 스토커 같은 인간이 내 앞에서 부르는거야.

내 기분이 어떨것 같니?”

“미안하다. 음치라서.”

“응, 노래는 진짜 못부르더라. 어디가서 노래하지 마라.”

난 빙긋이 웃었다.



“그리고 팔일째의 매미는 어디서 나온 얘기야?”

혜승이 다시 질문을 했다.

“너 말로 난 꿈이 없는 남자래. 그래서 진정한 꿈이란 무엇인가를 얘기하고 있었는데..”

“잠깐 말끊어서 미안한데, 너 귀신하고 그런 얘기 하고 있었니?”

“응 왜?”

“안무서워?”

“다른 귀신은 모르겠다. 그런데 넌 안무서워.”

“하긴… 나 처럼 이쁘면… 무서울 일이 없긴 하겠다.”

그 얘길 듣자 갑자기 웃음이 터져나왔다.

“왜 웃어?”

“이제서야 내가 알고 있는 손혜승다워서.”

혜승도 나를 따라 웃었다.

“그랬구나… 너가 나를 만난게 확실한 것 같긴 하다. 아, 참 얘기 도중이었지. 계속해.”

“그랬더니 너가 그 질문을 하더라구. 팔일째의 아침을 맞은 매미 얘기.”

“너 그 영화 봤니?”

“아니 나 일본어 못해.”

“내 일본어가 아직 모자라서 그런지

그 영화 내용이랑 팔일째의 매미가 뭔 상관이 있는지는 잘 모르겠더라.”

혜승이 난간에 턱을 괴며 말했다.

“그런데 그 질문만큼은 정말 강렬하게 내 머릿속에 남았어.”

“그런데 내가 너에게 그 질문을 했으니 놀라긴 놀랐겠다.”

“너가 그 얘기를 하지 않았으면 널 만나봐야 되겠다는 생각, 아마도 안했을껄?”

“그랬겠지.”

난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



“그런데 난 왜 결국 죽은거야?”

혜승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너가 그 얘기까진 자세하게 안했어. 나중에 천천히 얘기하겠다고 그랬는데 내가 그만 여기로 튕겨져 와 버렸지.”

“혹시 그 아우디?”

“그렇지 않을까 싶어. 너도 연애때문에 자살했다고 그랬으니까.”

“연애때문이라….”

혜승은 한숨울 쉬었다.

“아까 내가 죽어서 후회하더라 그랬었니?”

“응.”

“왜? 연애가 그렇게 괴로웠으면 죽어서 속 편해지는거 아냐?”

“죽고나서 정말 큰 고독을 맛보거든.”

“내가?”

“응.”

“어떤 고독?”

난 그걸 얘기해야하나 어쩌나 망설여 졌다.

“어떤 고독이 죽은 후의 날 기다리고 있는데?”

“연탄 피우고 자살하고 나서는 20일 후에 시신이 발견돼.”

혜승은 멍한 표정이었다.

“그 사이 아무도 널 찾지않았거든.”

이런 잔혹한 얘기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었다.

하지만 그녀로부터 질문을 받은 이상 속일 수는 없었다.

“내가 그렇게 죽는구나…”

혜승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어제 너에게 그 얘기를 한거야. 죽지말라고.”

“말은 고맙지만… 만일 운명이 그렇게 되어있는 거라면 어떻게하지?”

“글쎄… 과연 운명이라는게 정해져 있는 걸까?”

“정해져 있는게 아니면?”

“우리가 하기에 따라 바뀔 수도 있는 것 아닐까?”

“너의 운명은 바뀌고 있어?”

“운명이 바뀌고 있는지 어쩐지는 아직 모르겠어.

하지만 예전에 내가 살던 2011의 오늘과 지금 다시 살고 있는 2011년의 오늘은 달라

그 때는 손혜승이라는 여자를 몰랐는데 지금은 그 여자를 여기서 만나고 있으니까.”

“너 작업거는 거니? 우리 만난거 운명이라고?”

“지금 그 운명 얘기하는거 아니라니깐!!!”

내 말에 혜승은 큭큭큭 웃었다.



우리 둘 사이엔 잠시동안의 정적이 흘렀다.

“너 지금 운명을 바꾸려고 그러는거니?”

혜승이 물었다.

“운명을 바꾼다기 보다는 미래를 바꾸려고 노력하고 있는 중이야.”

“어떤 미래?”

“실패했던 공채시험에 붙어보려구.

그래서 내가 살아 봤던 2013년과 얼마나 다른 시간이 펼쳐지는지 한 번 보려구.”

“결국 그래서 날 보고 죽지 말라고 한거구나?”

“응, 한번 살아보라고. 너가 보지 못했던 그날 이후의 아침을 한번 보라고.

그래서 다른 미래를 한 번 맞아보라고.”

혜승은 빙긋이 웃었다.

“너 생긴건 스토커처럼 생긴게, 말하는 건 조금 멋있다.”

혜승이 빙글거린다.

“생긴 것도 나쁘지않어. 이거 왜이래.”

난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 날 이후의 아침이라…”

혜승은 혼자서 중얼거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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